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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윷놀이 유래와 도 개 걸 윷 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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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윷놀이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어요. 윷놀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중 하나로, 윷을 던져서 나온 결과에 따라 놀이판에 있는 말을 이동하는 놀이입니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윷놀이를 했는지, 윷놀이의 기원에 대해 알아겠습니다.

윷놀이
윷놀이

 

목차

윷놀이의 기원

부여 사출도

맺음말

 

 

윷놀이의 기원



윷놀이의 기원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예요. 우선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윷놀이가 부여의 사출도(부여의 지방 조직)와 연관이 있다고 봤어요. 윷을 던졌을 때 나온 결과는 '도'(돼지) '개'(개) '걸'(양) '윷'(소) '모'(말)로 구분되는데, 부여의 사출도는 마가·우가·저가·구가로 구성돼 있어요. 각각 말·소·돼지·개에 해당하지요. 신채호는 걸에 해당하는 양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윷놀이가 부여의 전통에서 기원했다고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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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기록에 근거해 우리나라에서 윷놀이가 삼국시대 때 시작됐다는 설도 있는데요. 중국의 역사서인 '북사' '수서' 등에는 "백제에서는 '저포희(樗蒲戱)'라는 놀이를 한다"라고 기록돼 있어요. 저포 흰 가죽나무와 부들(여러해살이풀의 일종)의 열매를 이용하는 중국의 놀이인데요. 북송 시대 책인 '태평어람'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 인물인 노자가 서쪽에 가서 만든 놀이라고 합니다. 놀이 방식이 윷놀이와 유사한데요, 이 때문에 북사와 수서에 등장하는 백제의 놀이가 사실은 윷놀이였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하는 거예요.

또 신라에서도 윷놀이를 했다는 추측이 있어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시와 노래를 모아 엮은 책)인 '만요슈(萬葉集)'에는 한쪽 면을 검게 칠한 타원형의 나뭇조각을 던져 노는 방식인 '저포'와 관련된 기록이 있어요. 이 가집은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 때 쓰였는데, 패를 읽는 방식의 일부가 윷놀이 패를 읽는 우리나라 발음과 비슷해 신라에서 넘어간 놀이라고 보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고려시대 때부터 윷놀이를 했다는 설도 있는데요. 고려 말의 유학자인 이색의 '목은집'에는 윷판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 모양이 현재의 윷판과 매우 유사해요.

윷놀이는 새해 초에 농사의 흉년과 풍년을 점치는 고대 풍속에서 비롯됐다고 해요. 산촌에 사는 젊은이들이 높은 지역 편과 낮은 지역 편으로 나뉘어 윷놀이 대결을 벌였고, 대결에서 이긴 지역의 농사가 더 잘된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죠. 윷놀이가 아무 때나 하는 놀이가 아니라 설날에서 정월대보름까지 하는 것도 이 풍속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부여 사출도

 

《삼국지》〈위지〉는 부여의 지배층은 왕과 가축의 이름을 붙인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와 그 외의 관직이 있으며, 여러 가(加)는 따로 사출도를 관할하였는데 큰 것이 수천 호, 작은 것이 수백 호라고 기록하였다. (부여의 정치가 5 부족과 사출도이다.)(경제:반농반목, 사회:영고, 순장이다)

'가'(加)는 한(韓), 간(干), 감(邯), 가한(可汗), 한(汗, Kan)과 같이 만주 및 몽고 계열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귀인·대인을 나타내는 칭호로 부족장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에 가축의 이름이 부여된 것은 고유한 특색으로, 목축경제 사회에서의 가축자본에 따른 족장의 칭호가 그대로 계급분화에 잔존한 것이라고 보인다. [1] 말과 소, 돼지, 개 등은 당시 사회에서 중요한 자본을 이루고 있었다. 마가, 우가, 저가, 구가가 부여에서 쓰던 사출도이다.



맺음말

사출도는 그 당시 일종의 행정 구획으로, '출도'(出道)라고 표현한 것은 중앙의 수도를 중심으로 하여 네 방향으로 통하는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윷놀이에서의 형상과 비슷한 것이다. 윷패가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동물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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